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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박사 “돈만 가지고는 사기 못올려… 자율성-목적의식 일깨워야”

2016.12.09 11:25

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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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비즈니스포럼 2016]경영 컨설턴트 대니얼 핑크 강연

 “홀에서 요리사가 보이도록 주방을 둘러싼 벽을 없앤 ‘오픈 키친’을 둔 음식점은 더 맛있는 요리를 내놓을까요? 답은 ‘그렇다’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짐작하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동아비즈니스포럼 2016’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미국의 미래학자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대니얼 핑크 박사는 ‘스마트한 조직이 혁신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주제로 한 강연을 이 같은 질문으로 시작했다.

 핑크 박사는 답으로 “손님이 요리사를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요리사가 손님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요리사의 책임감과 목적의식을 자극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핑크 박사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수석 연설문 담당 출신으로 예일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혁신, 동기, 재능 등을 다룬 ‘파는 것이 인간이다’ ‘드라이브’ 등과 같은 경영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저술가이다. 핑크 박사의 강연 내내 객석에선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영어와 한국어 질문이 쏟아졌고, 사진 촬영 요청도 쇄도했다.

○ “보너스를 주기보다 책임감을 자극하라”

 핑크 박사는 “기업이 연봉이나 보너스 등으로만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려 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에서는 금전적 보상이 작업 능률을 올려주지만 이런 단순 작업은 앞으로 컴퓨터나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돈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사람의 시야가 좁아지고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복잡하고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일에는 작업자의 책임감을 일깨우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핑크 박사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로 미국의 한 음식점에서 있었던 실험을 제시했다. 실험에선 요리사와 손님에게 카메라가 달린 태블릿PC를 지급한 뒤 손님만 요리사의 모습을 보게 한 경우와 요리사가 손님을 볼 수 있도록 한 경우로 나눴다. 그 결과 손님만 요리사를 볼 때에는 요리의 질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반면 요리사가 손님을 본 경우엔 훨씬 맛있는 요리가 나왔다. 연구팀은 “손님의 얼굴을 본 요리사가 ‘요리를 맛있게 만들겠다’는 책임감과 목적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핑크 박사는 이런 결과들을 토대로 “기업과 공공기관이 앞으로 성과에 연동되는 보상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을 점점 덜 느끼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사람은 누구나 ‘공정함’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동료에 비해 ‘너무 적은 보수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일 회사 사정상 경쟁사보다 보수를 적게 줄 수밖에 없다면 이런 상황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 “직원들에게 영감을 주려면 ‘자유시간’이 중요”

 핑크 박사는 또 “기업들이 성과를 얻으려면 직원들이 자율성, 전문성, 목적의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율성을 실현하는 방법으로는 일주일에 1시간 혹은 몇 달에 하루라도 직원들에게 완전한 자유시간을 주고 시킨 일이 아닌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할 것을 제시했다. 또 임직원의 전문성을 배양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의례적인 성과평가만 하지 말고 매주 1회 이상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미국의 인튜이트를 예로 들었다. 이 회사는 업무시간의 10%를 자유시간으로 할당하고 그 시간에 나온 발명에 대해선 특허권마저 해당 직원이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회사가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후 정식 사업 조직을 갖추기도 전에 직원들은 자신이 특허권을 가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7개나 제작해 발표했다.

 핑크 박사는 미국 워싱턴 주의 금융회사 컬럼비아도 사례로 제시했다. 이 회사는 콜센터 직원들에게 매주 1시간의 자유시간을 주고 서로 잡담을 하게 했다. ‘영감의(Genius) 시간’이라 불린 이 시간 동안 직원들은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눴고, 고객 상담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됐다.

 강연이 끝나자 한 참석자는 “우리 회사는 1년째 매달 ‘힐링 데이(치유의 날)’란 이름으로 자유시간을 주고 있지만 직원들은 그 시간에 사우나를 가거나 개인적인 일에 사용한다”며 “당연히 회사의 실적이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핑크 박사는 이에 대해 “한 달에 하루씩 놀게 해 주는데도 회사의 성과가 유지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 아닌가”라며 “직원들이 행복해하면 장기적으로 이직률도 낮아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을 주문했다. 다만 그는 “‘힐링 데이’라는 이름을 ‘경험의 날’로 바꾼다면 그 시간을 좀 더 생산적으로 쓰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핑크 박사와 대담 세션을 진행한 홍범식 베인앤드컴퍼니 코리아 대표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직원에 대한 신뢰”라며 “다만 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하므로 한 번에 모든 걸 바꾸려 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변화해 나간다면 회사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 동아일보 2016.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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